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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의 오래된 수필 중에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라는 책이 있다.
읽은 지 꽤되어 내용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아무튼 제목이 된 글은 마라톤을 하는 모습을
보고 꼴찌에게도 갈채를 보낸다는 내용으로, 제목만으로도 뭔가 뿌듯함이 느껴졌었다.
롯데자이언츠 하면, 나에게는 프로야구 원년에 어린이 회원을 모집하면서
야구 점퍼와 모자, 스티커, 문구류 등으로동심을 다 앗아가 버린 정말 꿈의 구단이다.
현재까지 삼성과 함께 이름이 바뀌지 않고 그대로 이어져 오고 있는
구단 중 하나이기도 하고.(OB 베어스는 두산으로 사명이 바뀌면서 이름이
바뀐 경우다. OB 베어스가 나에게는 오히려 더 가슴 벅찬 이름이지만...)
친구들과 붉은 색 자이언츠 점퍼를 입고 같이 구덕 운동장에서 보는 경기는
요즘의 플레이스테이션, 유희왕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기쁨이고 즐거움이었다.
롯데 덕분에 광적인 팬들이 많이 생겨, 부산을 구도(球都)라고 부르는것도 좋았다.
중간 휴식 시간에 부산 갈매기를 부르면서 모르는 사람들과 어깨동무하고 응원하는 것도 좋았고.
하지만 몇 년 사이정말 최하위 꼴찌로 남아,
텅 빈 구장에서 힘없이 선수들이 경기를 하는 모습에적잖이 실망했다.
팬들도 경기만 하면 지고 마니, 보고 싶은 마음이 안 드는 것도 당연지사.
몇 년을 이런 식으로 지내다 보니 선수들의 사기도 사기지만
부산 시민들의 어깨도 시즌 중에는 축 늘어졌었다.
오죽하면 스포츠 뉴스만 하면 '오늘도 졌습니다.' 얘기가 듣기 싫어 다른 데로 채널을 돌렸을까.
..
..
최근 롯데 자이언츠가 삼성, 두산에 이어 반게임차로 3위를 달리고 있다는
뉴스를 봤다. 반게임 차는 하루만에도 뒤집어 지니 거의 세 팀이 어깨를 견준다는 얘기다.
오랜만에 기분이 좋아진다.
이런 건 나와 별 상관없어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얘깃거리다.
꼴찌가 잘 해서 1등이 되면 더 좋겠지만, 아무튼 꼴찌를 벗어나 잘 하고 있다는
얘기는 그런 소식만으로도 든든해진다.
그래서 꼴찌의 '선전'은 잃었던 자신감을 북돋워 주는 무언의 후원군이다.
삼미의 패전 전문투수라는 오명 속에 1승을 위해 고군분투한 감사용 얘기를 그렸던
<슈퍼스타 감사용>을 아직 보지 못했다. 봐야지 봐야지 하다가 그만 시기를 놓쳐 버렸다.
그런데, 이제는 아껴 뒀다 롯데자이언츠가 한국 시리즈에 진출하는 날 보았으면 한다.
그 쪽이 감동이 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지금까지는 좀 소원했어도,
새로 툭툭 털고 일어선 이 땅의 모든 꼴찌들에게
진심어린 갈채를 보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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