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저녁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전 베란다 한 쪽 끝의 방충망을 걷고 바깥을 내다 봅니다.

비 냄새는 몇 시간 전부터 창가를 두드리고 있었지만, 하늘이 그렇게 어둡지는 않았죠.
결국 이렇게 비가 내리는 걸 보니 오늘의 일기 예보, '밤 한때 비 조금'은
대충 맞아 들어가나 봅니다.
유난히 비를 좋아하긴 해도요즘은 하루하루 이렇게 내리는 비에 더 감사하고 감동 받습니다.
사실, 이런 얘기는 뭣하지만이 비가 자신의 마지막 비가 될 수도 있고 계절의 마지막 비,
혹은 내 마음 속의 마지막 비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누구나가 비를 좋아하는 게 아니란 것도 얼마 전에 알았습니다.
비가 오면 몸이 눅눅해지고 옷이 젖고 집에 가기도 불편해서,
이런 비의 아름다움은 아랑곳 없이 비 자체를 편의적인 부분으로만 보고싫어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그 사람의 말도 맞습니다. 강아지를 모두 좋아하지 않듯이 말이죠.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곧 죽어도 비가 오면 어린 애 마냥 즐거워지는 것을.
아무리 힘들어도 비가 오는 걸 보는 것만으로 즐겁다는 것은 참 좋은 위안이 됩니다.
돈 들이지 않고도 마음의 안정을 가져온다면 그 어떤 약 보다도 좋은 것이겠죠.
그래서 이제 이 글을 딱 쓰고 나서는 또 베란다에 가서 손을 벌려 비를 맞을 겁니다.
전 아프리카 같이 우기에만 비가 오는 곳에 태어났다면 아마도 18세 이전에 죽었을 겁니다.
제가 우리나라에 태어난 것을 좋아하는 몇 안 되는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이 비 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봄날에, 코 끝이 시큰거릴 정도로 독특하고 사랑스런비 냄새가 나는 곳이 여기 말고 또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