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보르기니가 놓친 미군 험비의 자리

Posted by gams
2017. 11. 30. 22:39 밀리터리

미군의 작전 차량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죠. 바로 옆으로 넓은 차체를 가진 고기동성 다목적 차량 험비(HMMWV), 일반적으로 영문 HUMVEE로도 불리는 차량입니다. 



일반 민간에 판매되는 것은 험머(HUMMER)라는 이름으로 따로 유통 시키고, 군에는 험비를 보급했습니다. 


그렇다면 험비의 제작사는 어디일까요? 저 역시 시중에 다니던 차량을 보면 와~ 하고 감탄만 했지, 이 차량이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생각해 보질 않았네요.



시중에 떠도는 얘기 중에 람보르기니가 만들었다는 얘기가 있던데 과연 이 말이 진실인지, 이번 기회에 람보르기니와 험비와의 짧은 인연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일단 험비 차량 제작사의 이름은 람보르기니가 아닌 AM제너럴이라는 자동차 회사입니다. 원래 AMC라는 회사가 있었고, 이후 기업 분할이 되면서 AM제너럴로 제작사가 바뀌었습니다.




미군 군용 차량 험비의 역사


가장 먼저 험비와 비슷한 디자인을 미군에 제시한 것은 FMC사였습니다. XR-311이라는 프로토타입을 1970년에 육군에 제시하고, 이 중 10대를 판매해서 시험 테스트를 받았었죠.


1970년대는 석유 파동이 세계를 뒤덮으면서 불황의 그림자가 드리우게 되고, 람보르기니도 고급 스포츠카의 수요를 만들어내지 못해 경영 위기를 겪고 있던 때였습니다.


때마침 당시 미 육군은 오래 된 M151 지프와 트럭 등을 대신할 신형 전술차량을 구하고 있었고, 이때 이탈리아의 람보르기니는 군용 특수에 열을 올리던 다른 제작사들과 함께 시험용 차량을 제작해서 군용 테스트를 했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이름이 바로 치타(Cheetah)입니다. 군용 차량, 특히 오프로드 차량의 제작 경험이 전혀 없던 람보르기니였지만, 미국의 협력 제작사인 MTI사의 도움으로 캘리포니아 산호세에서 처음 디자인하고 제작한 후, 다시 본사가 있는 이탈리아 볼로냐로 보내 첫 차량을 완성하게 되죠. 




치타에는 5.9리터 V8 크라이슬러 방수 엔진과 3단 변속기가 장착되었습니다. 


역시 미군의 새로운 차량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FMC사는 앞서 얘기했듯이 비슷한 크기의 XR-311이라는 차량을 육군에 보내 테스트했는데, 모양새가 나중에 나온 치타와 흡사했습니다.


덕분에 1977년 치타가 XR-311의 디자인을 도용했다는 이유로 법정 공방이 이뤄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두 차량을 놔 두고 보면 비슷한 부분이 많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FMC로서는 당연히 화가 나는 일이었겠죠.


XR-311은 크라이슬러사의 5.2리터 또는 5.9리터 V8엔진을 뒤쪽에 탑재하고, 독립 서스펜션과 4WD 등 그 당시의 각종 최신 기술을 적용해서 12초만에 시속 60마일까지 낼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미 육군의 신형 차량 테스트에는 AMG의 험비, 람보르기니의 치타, 그리고 FMC의 XR-311 이 세 차량이 주 경쟁자로 떠오르게 됩니다.


하지만, 이 중 람보르기니의 프로토타입은 미군에 의해 구입되거나 테스트 되지 않았으며, 디자이너였던 로드니 파리스가 관계자들 앞에서 시연을 하게 됩니다. 


테스트 결과는 엔진의 무게 배분에 실패해서 핸들링이 조잡했고, 큰 차체에 비해 힘이 모자라서 전반적인 성능 저하가 있다는 평가를 받게 됩니다.


이 외에도 부품 모듈화의 어려움, 높은 유지 비용, 나쁜 연비, 그리고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인 재정적인 문제 등으로 인해 AM제너럴의 험비가 채택되었다고 합니다.


실패한 치타 프로젝트는 또 다른 프로젝트였던 BMW사와의 공동협업, BMW M1 개발에도 영향을 미처 결국 개발이 무산되고 말았죠.  


이후 1981년에 이 테스트 차량을 기본 베이스로 해서 만들어진 람보르기니 최초의 SUV가 LM001입니다. LM001은 좌석 후방에 엔진을 탑재한 리어미드쉽 차량으로, AM제너럴의 모회사라고 할 수 있는 AMC사의 엔진을 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앞서 군용 테스트 때처럼 전체적인 밸런스가 잡히지 않아, 프로토타입만 만들어지고 일반 판매가 되지는 않았죠. 그래서 실질적인 람보르기니 최초의 SUV는 이후 만들어진 LM002입니다.


LM002는 다시 엔진 위치를 프론트로 옮기고 람보르기니 카운타크의 5,167cc 450마력 12기통 엔진을 장착하게 됩니다. 섀시 자체도 완전히 새로운 것을 사용해서 차별화를 두었죠.


1986년 브뤼셀 모터쇼에 처음 전시하면서 상당히 럭셔리한 SUV로 일반에게 많이 팔리길 바랐지만, 실제로는 1992년까지 총 300대만 생산되고 그대로 단종 수순을 밟게 됩니다.  


소수의 SUV를 좋아하는 마니아층과 아랍 부호들이 이 차량을 구매하였죠. 지금도 가끔 영화나 자동차 커뮤니티 등에서 목격담을 볼 수 있습니다.


얼마 전 제작사 측에서 이 LM002를 완벽하게 복원하는 계획을 세워 복원에 성공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다시 생산해도 좋을 만큼 신차 느낌의 상태를 갖추고 있지만, 지금 와서 험비의 자리를 다시 빼앗을 수는 없겠네요.


험비 역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이제 그 자리를 2018년부터 오시코시사의 합동 경량 전술 차량, JLTV(Joint Light Tactical Vehicle)가 대신할 것이기 때문이죠.


아무튼 결과적으로는 몇 십년 동안 군수 차량으로 큰 수요를 창출할 수 있었던 기회를 람보르기니가 놓쳤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또한, 고성능 럭셔리 SUV의 붐이 일기 시작한 것도 훨씬 뒤였기 때문에 비운의 람보르기니라고 불릴 만도 합니다.


최근 들어 다시 SUV에 도전, URUS(우루스)라는 모델을 출시한다고 하는데요, 다시금 예전 그때의 아픔이 떠오를 것 같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때 선정되었던 험비는 민수 시장에서는 이리저리 팔려 다니다가 결국 GM에서 이도저도 아닌 평범한 험머가 되어 기름만 많이 먹는 차라는 별명이 붙고 단종하게 되죠.


반면에 람보르기니는 다시 스포츠카로 절치부심, 무르시엘라고와 가야르도 등의 명차를 계속해서 성공시키게 됩니다. 물론 지금은 아우디의 자회사가 되었지만 말이죠. 



만약 그때 당시 람보르기니의 치타가 차세대 미 육군의 차량으로 선정이 되었다면 아벤타도르나 우라칸이 맥을 같이 하는 슈퍼 밀리터리 차량이 탄생할 뻔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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