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푸틴과 로마노프 왕조의 몰락

Posted by gams
2016. 10. 28. 18:04 세상의 모든상식

1914년 7월28일, 세계 제1차 대전이 오스트리아의 세르비아에 대한 선전포고로 발발하고 러시아는 동맹국인 프랑스와 세르비아를 지원하기 위해 참전을 선언하게 된다. 이 참전 선언은 그동안 흩어졌던 러시아의 민심을 하나로 모으는 데 효과를 보게 되었고 무려 러시아 전체 노동 인구의 1/3에 달하는 1,500여만 명이라는 대규모 병력이 전쟁에 참여하게 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여러 에피소드에서 알 수 있듯이 1차대전에서의 러시아는 군수품 부족으로 전쟁에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었다. 국내를 비롯해 전쟁 물자 부족 현상에 시달리던 러시아는 총 대신 칼을 들고 싸울 정도로 독일에 대한 대응 태세가 허술했다.



(진지 속의 러시아군, 출처: 위키피디아 - en.wikipedia.org)





금방 끝날 것 같았던 전쟁이 1년을 지나 1915년에는 더 확대 국면에 접어들게 되자, 예상과 달리 러시아 전역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국민들은 전쟁의 어려움에 더해 생활 물자 부족에 시달리게 되고, 설상가상 터키가 독일 동맹에 참여하면서 다다넬스 해협이 봉쇄되어 러시아로 들어오는 화물선을 전면적으로 막아버리게 된다. 


한편 대규모 사상자를 내면서 전쟁이 러시아가 생각했던 대로 흘러가지 않게 되자, 총사령관이었던 니콜라이 니콜라예비치 대공은 반격을 준비하며 독일의 후방을 기습하려 하지만, 오히려 서부 전선에서 패해 터전을 잃은 피난민의 급증과 쓸데없는 포로들만 늘어나 물가가 치솟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니콜라이 2세와 알렉산드라, 출처: 위키피디아 - en.wikipedia.org)


러시아 마지막 왕가였던 로마노프 왕조는 이때 이미 나락의 길을 걷고 있었는데, 전쟁에 정신이 없던 차르, 니콜라이 2세 대신 왕궁을 차지하고 있던 사람은 바로 라스푸틴(Grigorii Efimovich Raspu´tin)이었다. 그는 전쟁에 나선 니콜라이 2세가 정신이 없는 틈을 타 그의 배우자였던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의 정신을 뺏는 데 주력한 요승으로 불렸다.


라스푸틴과 알렉산드라는 국왕이었던 니콜라이 2세 몰래 총사령관이자 숙적이었던 니콜라이 니콜라예비치 대공을 제거할 계획을 세우는데, 이는 그에 대한 물밑 작업이 이미 끝난 뒤에 알려진 일이었다.





전쟁이 한창이던 1915년,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주도권을 잡지 못하고 방황하던 니콜라이 2세에게 라스푸틴은 니콜라예비치 대공을 패전 책임을 물어 숙청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민심을 수습해야 할 처지에 놓여 있던 니콜라이 2세는 그와 황후의 의견을 받아들여 그를 총사령관에서 물러나게 하고 후임으로 자신이 직접 총사령관이 되어 남은 전쟁을 치르게 된다. 


참고로 니콜라이 니콜라예비치 대공은 니콜라이 2세의 삼촌이었지만 전쟁을 이끌만한 인물이 되지 못하였고, 이 두 사람이 전쟁을 이끈 것이 결정적으로 1차대전에서 러시아가 마지막에 발을 빼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였다. 또한, 황후의 뒤에서 그녀를 조종했던 라스푸틴은 가난한 시베리아의 농민으로 태어나 이웃의 말을 훔치다 쫓겨난 망나니였다.



(라스푸틴)


그 후 그는 한 수도원으로 들어가 수도승이 되었는데, 이 수도원은 독특한 방법으로 새로운 신흥 종파를 이루고 있었다. 바로 신도를 홀리는 최면술을 자신들의 포교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었으며, 이 과정에서 많은 수의 귀족들이 이 종교에 빠져들게 되었다. 황후 알렉산드라 역시 이들 귀족들의 소개로 라스푸틴을 알게 되었으며, 결국 그를 궁중까지 끌어들여 로마노프 왕조를 멸망시키는 데 일조를 하게 된다. 



(막내 아들 알렉세이, 출처: 위키피디아 - en.wikipedia.org)


이들 황제 부부가 라스푸틴을 신임하게 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막내 아들 알렉세이 때문이었다. 알렉세이는 작은 상처에도 피가 멎지 않는 혈우병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이 혈우병을 라스푸틴이 낫게 해 준다며 최면술을 이용한 시술을 하게 되고, 거짓말처럼 아들의 병세가 호전되어 그의 신적인 능력을 믿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알렉세이의 병이 실제로 어떻게 나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전쟁을 진두지휘하게 된 니콜라이 2세는 수도를 떠나 전쟁터를 전전해 국내 정치에 힘을 쏟을 여력이 없었고, 이 틈을 타 라스푸틴은 황후의 뒤에서 섭정을 횡행하게 된다. 황후와 라스푸틴의 계략에 빠진 황제는 이들의 말을 전적으로 신임하며 충신들의 고견을 듣지 않았고, 그가 결정 내려야 할 사안들은 모두 황후의 손에서 좌지우지되고 말았다. 이때의 러시아는 라스푸틴의 러시아라고 할 만큼 모든 정책들이 그의 손에 달려 있었다. 심지어 꿈에서 계시를 받았다는 내용을 전선에 있던 니콜라이 2세가 믿도록 황후에게 편지를 쓰게 하기도 하였다.



(당시 러시아 상황을 풍자한 만화, 출처: 위키피디아 - en.wikipedia.org)


전쟁이 러시아의 의도대로 이뤄지지 않게 되자 니콜라이 2세는 황후와 라스푸틴의 말을 전적으로 믿게 되었고, 라스푸틴이 전한 성자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면서 뜬구름 잡듯 군과 러시아 국민들을 엉뚱한 방향으로 이끌고 말았다.



이렇게 황후를 뒤에서 조종한 라스푸틴 때문에 러시아 내정은 혼란이 극도에 달하게 되었고, 라스푸틴은 황실을 구하고자 했던 충성스런 황실의 측근들에 의해 권총으로 사살되었다. 그의 시체는 추운 강물에서 발견되었지만, 이런 충신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1917년 2월, 마침내 시민 혁명이 시작되었다. 라스푸틴이 암살된지 두 달만에 니콜라이 2세는 스스로 하야를 결정하고 그 왕위를 내 주고 말았다.


그 후 니콜라이 2세와 황후 알렉산드라는 1918년 7월 17일, 외딴 저택의 지하실에서 가족들과 함께 처형 당해 생을 마감하게 된다.



(2월 혁명 당시 행진하는 러시아 군인들, 출처: 위키피디아- en.wikipedia.org)



결국 러시아는 니콜라이 2세나 알렉산드라 황후, 그리고 정신 나간 라스푸틴이 아닌 국민의 손으로 다시 되돌려지게 되었고, 300여년에 걸쳐 이어져 오던 긴 로마노프 왕조의 역사는 이렇게 러시아 제국과 함께 끝을 맺었다.


이때 만들어진 노동자, 군대, 농민 대표 회의 '소비에트'는 나중에 10월 혁명으로 만들어진 사회주의 국가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소련)'의 근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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