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수로 4년째 같이 일하는 친구 중에 항상 메신저를 접속하면 '잘 계시죠?' 하고 인사하는 사람이 있다.
거의 매일 보면서도 항상 첫 인사는 잘 계시죠다. 처음엔 '이 사람이 장난치나?' 그러고 불쾌하기까지 해서 몇 번 '네...' 그러다가 '어제 봤는데 또 그런 인사합니까?' 하고 핀잔을 주기까지 했다. 그래도 꿋꿋이 언제나 날이 바뀌면 또 '잘 계시죠?' 혹은 '잘 지내시죠?' 로 인사를 일관하는 것에 두 손을 들어버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문득 얼마 전부터 이건 이 사람이 정말 나를 위해주는 인사구나 하는 걸 느낄 수 있었는데, 오랫동안 그 사람을 봐 왔기 때문에 이 인사가 얼마나 자기에게는 존중의 의미인지를 알게 된 거다.
그건 그 사람만의 인사지만, 내게 다가오는데 까지는 참 많은 시간이 지난 거라서, 겨우 그 인사의 의미를 알고 나서는 여간 미안한 게 아니다.
그래서, 사람은 오래도록 만나보고 알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하는 것 같다.
오늘도 역시 이 친구의 인사는 잘 계시죠였다.
이젠 이 인사가 무척 반갑다. 마찬가지로 일관된 내 대답 '네, 덕분에요.'도 그 사람에게 존중의 의미로 들릴 거라 생각한다.
길을 걷다가 어디선가 키스자렛의 My Song이 흘러 나온다면 난 그냥 지나치지 않고 그 노래가 나오는 곳을 한 번 찾아볼 것이다.
그런 행동은 이상한 것이 아니다. (하도 시끄러운 세상이라서 이런 노래가 스피커에서 풀 볼륨으로 흘러 나온다 한들 잘 들리지도 않겠지만...)
학교 때 레코드샵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샵 앞에 놓여있는 스피커로 흘러나가는 노래의 선곡에 무척 신경을 썼던 기억이 난다.
특히 비 오는 날이면 샵 앞에 비를 피하려고 서 있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기분이 들었으면 하는 생각에 신나는 릭 애슬리의 노래나 비 오는 날 수채화와 같은 비 오는 날에 어울리는 노래들을 틀었었다.
간혹 노래를 듣고 이게 무슨 노래인지를 알려고 들어오는 사람들을 만나면 무척 반가웠다. 음악적인 교감이랄까..
그랬던 내가, 이제는 거의 음악을 안 듣는 것과 비슷하다. (물론 그때와 비교하면 말이지. 지금도 나름대로 듣는 척 하긴 한다.)
어떤 노래나 음악을 들으면 많은 것이 떠오르고 생각나고, 또 잊었던 게 되새겨진다. My Song 이나 팻 메스니의 If I Could, New Chautauqua같은 곡들은 그런 떠올림이 몇 수십 배, 아니 수백 배는 더해서, 얼어 붙은 듯이 그 노래를 끝날 때까지 듣곤 한다.
이건 하루키가 몇 번을 정독해서 읽었다고 했던 것. 응응은 정말 재미가 없었다고 하는데, 직접 읽어보고 정말 그런건지 느껴보고 싶었다. 여러 번역본이 있지만 이건 안에 칼라 그림들이 많이 들어 있어서 동화책 같은 느낌이다.
박완서의 새로운 수필집이다. 지난 날들에 대한 얘기와 사는 얘기들이 주로 있다. 원래 1979년에 발간되었던 '동화집'이라는 수필집 중에서 빠졌던 원고들을 모아 출간한 것이므로 70년대의 이야기라고 보면 된다. 박완서는 하루키와 참 비슷한 사람이다. 내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국내 작가이기도 하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읽어서 보기가 좀 그랬지만 한 번쯤은 읽어보고 싶던 책이다. 내가 원하는 걸 만드는 연금술사가 될 수 있을지를 한 번 알아보려고 산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