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입대를 위해 병역비리를 저지른 대통령

Posted by gams
2017. 9. 21. 19:01 밀리터리

1945년 8월 6일, 15kt의 핵폭탄 '리틀 보이(Little Boy)'를 실은 은색 폭격기가 일본 도쿄 상공에 나타났습니다. 


(1차대전 참전 당시의 트루먼 대통령 모습)


폴 티베츠 중령이 모는 미국 최대 폭격기 B-29 'Enola Gay'가 티니안 섬 미 공군기지를 출발해 일본 본토까지 도달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인류가 사용해 보지 않았던 원자폭탄이 히로시마 상공에 떨어졌고, 결국 이 사건으로 일본은 7만명의 직접적인 인명피해를 인정하고 이미 끝나버린 2차대전의 마지막 항복을 하기에 이르게 됩니다.


핵무기 사용에 대한 명령은 미국 제 33대 대통령 트루먼에 의한 것이었고, 이 결정이 2차대전과 태평양전쟁을 끝내는 마지막 최후의 공격이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은 군입대를 위해 병역비리를 저지른 대통령에 대해서 포스팅해 보겠습니다.




착한 병역비리를 저지른 대통령


해리 S. 트루먼은 어릴 때 책을 너무 많이 읽어서 일찍 눈이 나빠졌고, 이 때문에 사관학교에 들어가기 위한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할 곤경에 빠지게 됩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포기했을 테지만, 그는 시력 검사를 위한 표를 송두리째 외워 버렸고, 결국 입대에 성공하게 되죠. 그 후에 그는 미주리주의 방위군에 소위로 임관하게 됩니다.


그가 참전했던 1차 세계대전에서 그는 프랑스로 가 포병장교로서의 역할을 다했으며, 종전과 함께 대위로 전역합니다.   


그는 1922년부터 1934년까지는 법조인으로 지내다 상원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 인생을 걷게 됩니다. 하지만 그가 큰 정치인이 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치 못하다가, 1945년 1월에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러닝 메이트로서 부통령이 되며 그 위치가 확연히 달라집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4선까지 지내며 위대한 미국을 만드는 데 일익을 담당하게 되지만, 트루먼이 부통령이 된 그 해 1945년 4월에 갑자기 뇌출혈로 사망하게 됩니다. 


준비되지 않았던 트루먼은 얼떨결에 미국 대통령직을 승계하게 되는데, 가장 큰 문제는 그때가 2차대전이 진행되던 중이었다는 점이었습니다.


1차대전 때 사용했던 독려 포스터를 다시 이용하면서 트루먼은 젊은이들의 입대를 독려하였고, 이에 많은 미국의 젊은 청년들은 세계 평화와 미국의 평화를 위해 싸운다는 명목 아래 전선으로 모여들었죠.


(폴 티베츠 중령과 원폭을 투하했던 B-29 'Enola Gay')


2차 대전을 완전한 승리로 이끌기 원했던 트루먼은 결국 히로시마에는 Little Boy를, 나가사키에는 Fat Man을 보내 1942년 9월 2일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받아내게 되었습니다.


2차 대전이 끝난 후에는 함께 싸웠던 연합군 국가들이 재건하는 데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심지어 독일이나 이탈리아, 그리고 일본 같은 적국들의 재건에도 많은 지원을 했습니다.


이후 공산국가가 퍼지지 않도록 트루먼 독트린을 구성하였고 아시아에서 힘의 균형을 위해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에도 미국이 지원하였습니다. 


(트루먼 대통령과 맥아더 장군이 함께 했던 모습)


이후 일어난 한국전쟁에서는 맥아더와 함께 중국과 러시아의 공산화가 더 이상 남쪽으로 진격하지 못하도록 한반도의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서 노력했다는 것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이야기죠.


아이러니하게도 젊은 시절 그가 군입대를 위해 저지른 병역비리가 나중에 강건한 대통령을 만들었다는 데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것입니다. 


세계 질서를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했던 트루먼 대통령은 1972년 12월 26일, 인생의 마지막 크리스마스를 보낸 자택에서 89세로 삶을 마감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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