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네이터: 미래 전쟁의 시작(Terminator Salvation)

Posted by gams
2009. 5. 25. 21:26 Review/Book & Movie


* 노무현 전대통령의 명복을 빌며...*


'터미네이터'.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1편이 나온 지 벌써 2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1984년에 1편이 개봉되었다. 당시 1편은 그 구성이나 스토리가 B급 SF 영화 수준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래도 터미네이터의 세계관과 함께 스토리의 중추적인 시점을 다루고 있어 꽤나 가치가 있는 영화다.) 죽지 않고 정말 죽을 때까지 인간을 괴롭히던 1편의 터미네이터가 계속 진화하여 4편까지 나왔다. 1편은 맛보기로, 2편은 1편보다 뛰어난 수작으로, 그리고 3편은 어설픈 돈벌이용 영화로 전락하고 말았지만, 결국 터미네이터는 네 번째에 다시 재기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터미네이터의 최신작 "터미네이터: 미래 전쟁의 시작(원제: Terminator Salvation)"이 개봉되었다.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가장 뛰어난 완성본이라 불리던 '터미네이터 2' 와 비교해 본다면 거의 종이 한 장 정도 차이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번 시리즈는 완성도가 높다. 과거와 미래가 현재를 기준으로 계속 순환되는 고리를 이루는 특이한 이야기 구조를 차치하고라도, 터미네이터는 미래의 구원이라는 점에서 그리스도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그 구원이 절대적인 구원이 되지 못해 결국 인간은 '심판의 날'을 맞게 되지만, 그 속에서 다시 살아 남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모습이 이번 4편에는 들어 있다. 
 
제작비 2억달러, 한화로 치자면 2,500억원 이상이 들어간 작품답게 모든 게 돈으로 잘 발려 있다. 공중전을 벌이던 헬기나 전투기, 기계 군단의 각종 로봇들, 그리고 저항군의 다양한 코스튬과 부서진 도시까지, 많은 부분이 어색하지 않고 짜임새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전투 장면도 꽤나 실감 나고 사실적이고. 사실 T3 같은 경우는 어색한 CG와 함께 모든 부분이 드라마 속 장면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는데, 이번 시리즈에는 그런 것을 고려해 최대한 돈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는 심혈을 기울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칭찬해야 할 것은 각 캐릭터들의 연기.

특히 존 코너를 연기한 크리스찬 베일은 그 어떤 시리즈에서보다 존 코너의 역할을 충실히 해 내고 있다. 크리스찬 베일은 익히 알고 있듯이 '이퀄리 브로엄'에서 현실과 이상에 갈등하는 냉철한 요원으로 등장한 이후, '배트맨 비긴즈', '배트맨 다크나이트'에서 더욱 뛰어난 연기력을 선보인다. 그의 액션 연기가 무르 익은 시점에 바로 T4에서의 존 코너 역할이 맡겨진 것은 어쩌면 터미네이터의 팬으로서는 다행스런 일이라고 하겠다. 존 코너는 그냥 액션만 생각해야 하는 캐릭터가 아니다. 과거와 미래, 그리고 현실 속에서 많은 고뇌를 하는 캐릭터이므로, 힘만 좋은 배우를 캐스팅 해서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크리스찬 베일 외에 등장하는 또 한 명의 남자인 마커스 역 샘 워싱턴의 연기도 눈 여겨 보기 바란다. 이 사람은 앞으로 헐리우드 액션 영화의 미래를 짊어 질 것이 틀림 없다.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T1의 히어로라면, 샘 워싱턴은 크리스찬 베일에게는 미안하게도 그를 능가하는 T4의 히어로이다. 꽤 많은 영화에서 그의 이름을 앞으로 보게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밖의 인물들을 간단히 살펴 보면 섹시한 A10기 조종사 문 블러드 굿은 한국계 배우로 얼마 전 섹시 화보를 통해 먼저 우리에게 알려졌고(이뭥미...), 존 코너의 아버지인 카일 리스 역에 등장한 안톤 옐친도 이미 '스타트랙: 더 비기닝'에서 어색한 영어를 구사하는 러시아 항해사로 나온다.(이 또 뭥미...) 가장 실망스런 인물은 바로 저항군 사령관으로 잠깐 나오는 마이클 아이언사이드이다. 그는 '스타쉽 트루퍼스'의 교관으로, 또 '토탈 리콜'에서는 아놀드를 뒤쫓는 정부 요원으로 열혈 연기를 선보였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그야말로 독 안의 쥐 꼴이 되어 그의 연기력이 물 속에 파 묻히는 수모를 당한다. 어차피 단역이라지만 그래도 그의 포스를 생각한다면 장면들이 조금 미흡하지 않았나 싶다.

일단 영화를 보고 난 후의 생각을 얘기하자면, 로봇이나 매카닉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꼭 보라는 것이다. 로봇으로는 '트랜스포머'를 이길 영화가 없겠지만, 이번 T4 는 '트랜스포머'와는 또 다른 면이 있으므로 보길 권한다. 특히 스켈레톤으로 불리는 T 시리즈가 다양하게 등장한다. 아래 T 시리즈 사진을 참고하시고. 물론 T 시리즈 말고도 다양한 로봇들이 많이 등장한다.

영화의 일반적인 측면에서는 감동이 약간 부족했다. 뭐 액션 영화가 감동을 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할 지 몰라도 '다이하드' 나 '스피드' 같은 영화는 감동적인 액션 영화가 히트도 잘 한다는 공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미 우리나라에서 개봉한 지 4일만에 160만명을 돌파한 것은 최근의 갑갑한 현실과도 관련이 있겠지만, 이 영화는 희망을 불러 일으키는 그런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앞으로 펼쳐 질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우려를 마지막에 담아 내고 있기에, 어찌 보면 '스타 트랙: 더 비기닝' 의 정말 영화스런 결말보다는 칙칙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도 나름 감동적인 장면이 몇 군데 있기에 그 포인트에서는 살짝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경험해 보기 바란다.

사운드 면에서는 꽤나 칭찬해 줘야 하겠다. 별 장면이 아닌 상황에서도 사운드 때문에 깜짝 깜짝 놀라는 경우가 잦았다. 특별히 영화관의 사운드가 잘 구성되었다는 느낌은 아니었고, 영화 자체의 효과음이 적절하게 적용된 듯 했다. 커다란 로봇들이 등장할 때는 우주전쟁의 외계인들이 등장했을 때 나오던 효과음과 비슷한 소리가 들려 섬뜩한 느낌도 들었고. 돈을 벌어 들이려면 보는 것과 듣는 것이 '최고'여야 하는 최신 영화답다.

이 밖에도 영화를 보기 전에 전 시리즈들을 다시 보고 간다면 뒤죽박죽 움직이는 시간에 대한 이해가 더 빨리 될 것이다. 영화 말고 2008년에 만들어졌던 TV 시리즈 '터미네이터 사라코너 연대기' 를 보는 것도 존 코너와 그의 가계사를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고.(사실 나는 영화를 보러 가기 전날 채널 CGV에서 해 줬던 터미네이터 전편 방영 덕분에 잊혀졌던 기억을 되살리며 T4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을 몰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게 '터미네이터' 초보를 위해 배려하고 있으므로 이전 시리즈들이 기억나지 않는다 해도 크게 상관할 바는 아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마지막으로 들었던 생각은, 기계와 맞서는 인간을 표면적으로 내 세우긴 했지만 현실도 이와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점이었다. 저항군이 실제로 기대고 있던 것은 시민군이었다. 일상 생활을 하던 그들의 손에 들려진 총은 지금의 이라크나 팔레스타인 민병대들이 들고 있는 총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그 총을 대신해서 들고 있는 우리의 촛불도 이런 상황과 다르지 않을 듯 하고. 영화와 현실 정치를 연관 시키는 것은 너무 어불성설이라 이쯤에서 그만 두겠지만, 아무튼 그런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몇 가지 영화 관전 팁. '터미네이터 2'에서 다부진 사라 코너의 역할로 유명세를 탔던 린다 해밀톤은 목소리로 본 영화에 간간히 등장하고, 아놀드 슈워제네거는 CG를 통해 T1 으로 부활한다. 정말 이 장면은 터미네이터 팬들을 위한 최고의 선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만큼 영화 터미네이터의 가장 큰 수혜자는 현재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지내고 있는 아놀드 슈워제네거일 것이다. 영화 속에서만큼이나 현실에서도 저돌적이고 개혁적인 정치를 하길 바랬던 사람들이 그와 터미네이터의 이미지를 동일시 한 덕분에 그는 2003년 당당히 주지사에 당선된다. 거기에 재선까지. 하지만 그런 기대와는 반대로 현재 캘리포니아의 사정은 산불 후유증에 환급 세금을 돌려줄 수도 없는 최악의 상황까지 갔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제임스 카메론과 함께 손발을 맞춰 살아 있는 듯 무시무시한 터미네이터를 만든 장본인인 스탄 윈스톤은 이후 '에일리언', '프레데터', '가위손', '쥬라기공원' 등에서 특수분장과 특수효과를 맡아 헐리우드의 가상 세계를 현실화하는데 큰 역할을 담당한다. T4 촬영 중 2008년에 세상을 떠났으며, 영화 마지막 크레딧에는 그의 죽음을 아쉬워 하는 문구가 뜬다.
 
그리고 이건 아주 개인적인 바람이지만, 터미네이터의 부활처럼 아놀드도 이 말과 함께 정치적인 부활에 꼭 성공하길 바란다.
 
I Will Be 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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